2006年10月 5日 (木)

486

486といっても、むかしのCPUではない。「サパッリュク」とは韓国のわかものことばで「愛してる」とのこと。사랑해が4画・8画・6画だからだそうだ。こうなるともう暗号。

しかしㄹは3画ではないかと思うのだが、韓国では5画と数えるのが正しいのか、あるいは間違いでそう数え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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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10月 4日 (水)

갈비 カルビ

若者言葉。갈비。肉ではなくて"갈"수록 "비"참하다(ますます悲惨)などの略号だそ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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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9月 3日 (日)

ある・まなびーや

韓国語学習支援blog  "aL MaNaBi-Ya" (ある・まなびーや)を作りました。ご参照いただき、コメントにて意見・批評などくだされば幸甚。

http://manabi-ya.cocolog-nifty.com/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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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8月19日 (土)

韓国語Windowsで起動する方法

以下は教わったことをWindows2000に適用したものです。

スタート→ 設定→ コントロールパネル→ [地域のオプション]アイコン

[全般]タブ→ ロケール→ 韓国語

[規定値に設定]ボタン

  適切なロケールを選択してください→ 韓国語

  [OK]ボタン

[適用]ボタン→ !  [はい]ボタン→

?  再起動しますか→ [はい]ボタ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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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で韓国語Windowsになった?かとおもいます。タスクバーの時間表示が오전/오후と表示されていますか?

全部ハングル表示になるかと思えばさにあらず。見た目は日本語Winとかわりません。しかし微妙に文字化けしているところがあるのがわかります。カタカナの一部、新漢字などです。

XPでやってみましたが、なんと、あるCDライティングソフトでハングル書きのmp3の曲が焼けたのです。同ソフトで通常は文書名不正としてはねられていたものです。泣く泣くローマ字などで表記して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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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絶対にしてはいけない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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ブラウザを起動しないでください。お気に入りなどが破壊されます。わたしの場合どうしても復元できなくて、日本語Winに戻ってもエラーの連続で、ついにそのブラウザを完全削除して、インストールしなおしました。いままでためてきた貴重なリンクも全部消えました。

試すときは、まずお気に入りを保存しましょう。しかしその他のコントロールなど全般でエラーが起きるので、再インストールは覚悟したほうがいいでしょう。

言語ごとに違うブラウザを使うようにすればいい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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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8月17日 (木)

韓国の教科書

韓国在住の知り合いが、高校教科書を送ってくださいました。いずれも2003年3月初版の刷り増しです。

국사  国史です。以前は上下巻あったのですが、版が大きくなり1巻になっています。構成は以前のものと驚くほど違います。また改めて書きましょう。

한국지리 韓国地理。これも以前のものと構成が違うようです。

도덕 道徳

윤리와 사상  これはタイトルを見た瞬間に요리と勘違いしました。腹が減っていたのです。 사상もボヤッと「事象」て何だろ、と思ったのですがこれは「思想」ですがな。同音異義語です。「倫理と思想」教科書でした。

전통윤리 伝統倫理 ←この発音おもしろそうです。「チョントンニュリ」になりませんか?

사회/문화 社会・文化

사회/문화 社会・文化、と別の本が2冊ありました。国定教科書だから1冊しかないと思っていたのですがね。現場で選択できるの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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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8月 9日 (水)

나라와 나<2>

한국인의

일본인이 되기는 힘든다

  한국 선수들의 환희 고리는 이읃고 태국기(국기) 선두에 위닝런이 됐다.

   우승한 같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의 긴조 다쓰히코(30・金城龍彦) 벤치 울짱에 기대 분한 표전으로 그것을 보았다.

     3 15 미국 캘리포르니아주 애나하임. 야구의 나라 지역별 대항전(WBC) 2 리그에서 일본은 한국에 졌다. 일본에서의 1 리그에 이은 폐전이였다.

     한국계 미국인이 많은 도시에서 관객석은 한국에 응원이 압두적이였다. 비슷한 아웨이의 분위기를 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

     94 여름, 한국 서울 동대문 야구장에 긴조는 있었다. 한국 고교야구 봉황대기 쟁탈 대회가 열어 있었다. “한국의 고시엔(甲子園)이란 대회에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 팀이 참가하여 3학년 학생이던 긴조도 일원이였다.

     시합에서 이상하다 느꼈다. 관객에서 그들에게 야단이 날아왔다. 스토라이크와 , 아웃과 세이프, 심판의 판정은 불리한 밖에 없는 같았다. “이기게 시키지 마라라같은 분위기가 구장을 포의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이거든”. 처음에 찾아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그리고 자기자신의 조국”. 일본을 떠나기 전에 느낀 고양감이 급속히 깨졌다. 순순결승으로 져야 맹렬한 향수에 걸렸다.

     조국을 알게 시키고 싶다, 좋아하게 시키고 싶다”. 사카이시에 사는 재일본 대한 야구 협회 회장인 한재우(69・韓在愚 ) 그런 마음으로 선수를 모아 매년 한국에 데리고 갔다.

     심판과 싸움이 되는 것은 시합마다 생겼다. 전에는 관객에서 쪽발이( 일본인)” 야단도 끊임없고, 침을 받은 선수마저 생겼다.

     이대로 조국애란 생길까?” 한재우는 되돌아 보았다. 연마다 선수나 자금이나 모이기가 오려워졌다. 56년부터 시작된 파견은 97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

     애나하임에서의 일본의 폐전. 전에 프로야구 긴테쯔에 소속했던 긴조의 아버지 아키요(60・晃世) 텔레비전 앞에 분하게 됐다. 다르게 명백하게 하지 못하는 생각도 생겼다. 아들이 없었다면 어느 쪽을 응원했을까?  복잡하지”. 아키요는 번이나 중언거렸다.

     아키요는 오사케에서 태어난 재일 2. 일본은 신세 많이 나라라고 한다. “우리 나라라면 한국이다. 조국 전통은 소중하게 지켜왔다. 제사에는 반드시 아이들을 참석시켰다. 자신은 국적을 일본으로 바뀔 생각은 거의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본인에 판단으로 맡겼다.

     긴조는 수위타자과 신인왕을 획득한 00년에 결혼. 그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계속 일본에 살고, 아이도 있다. 철대 이것이 낫다”.

              *****

     한국에 연폐한 3 순결승에서 이본은 세째 한국과 대전하여 왕승했다. “일본 대표의 하나로서 세계 무대에서 싸울 있다는 것이 기뻤다 긴조는 말했다.

     그러나 일본인이 되기 힘든 자기를 응시한다. “혈은 역시 한국인이니까”. 이제도 귀성하면 어머니에 한국요리를 맛있게 먹는다. 전통을 이어져 있다는 의식도 강하다. “결극 어느 쪽이도 아닌데요”.

     한국에 사는 한국인, 일본에 사는 일본인. 아무 갈등도 없고 조국이라 부를 있는 사람들이 있다. “ 부럽다 한다.

          (아사히 신문 2006.8.9. enkoreigis 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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